줄거리
서강의료원 장기이식센터의 코디네이터 문정원은 오랫동안 기증자와 수혜자 사이를 이어 온 사람입니다. 상담실의 두 의자 옆에 티슈 상자를 하나씩 두는 것도 그녀가 오래전에 정한 규칙입니다. 그런 정원에게 병원이 공을 들인 프로젝트가 맡겨집니다. 가족에게 신장을 주고 싶어도 혈액형이나 조직형이 맞지 않는 가족들을 하나의 사슬로 엮고, 순수 기증자 한 사람이 첫 조각이 되어 릴레이로 이식을 이어 가는 '도미노 이식'입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다섯 건짜리 연쇄입니다.
사슬에 선 사람들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투석 중인 아내를 위해 생면부지의 남에게 신장을 내주기로 한 트럭 기사, 남편을 살리려고 수술대에 오르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간병인, 국회의원 집안의 모녀, 열일곱 살 투석 환자와 대리기사로 일하는 삼촌이 있습니다. 첫 조각이 되겠다고 나선 기증자는 그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어색한 오리엔테이션을 거치며 다섯 가족은 조금씩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언론은 이 사슬에 '기적'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수술 전날 밤, 정원은 전산 기록에서 기증자 한 사람이 심사 과정에서 숨긴 사실을 발견합니다. 규정대로라면 보고하고 전체를 멈춰야 합니다. 그러면 다섯 사람이 기회를 잃고, 그중에는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운 소년도 있습니다. 보고하지 않으면 한 사람이 위험해집니다. 정원은 그 밤에 결정을 내리고, 소설은 그 결정이 열흘 뒤 어떤 모양으로 돌아오는지를 따라갑니다.
이 소설에는 악의를 품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랑, 원칙, 속죄, 정직처럼 모두 선의라고 부를 만한 동기들만 있습니다. 이야기는 생활 코미디에서 출발해 카운트다운 서스펜스와 미디어 스릴러를 지나 법정에 이르고, 시점은 사슬의 순서를 따라 한 사람에게서 다음 사람으로 넘어갑니다.
등장인물
- ·문정원 서강의료원 장기이식센터의 이식 코디네이터입니다. 나쁜 소식을 전하는 자리에 오래 앉아 본 사람이고, 5연쇄 이식의 실무를 맡습니다.
- ·최만복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트럭 기사입니다. 투석을 오래 해 온 아내 고은숙을 살리기 위해 낯선 사람에게 신장을 주기로 합니다.
- ·자밀라와 라흐만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부부입니다. 간병인으로 일하는 자밀라는 투석 중인 남편을 위해 사슬에 들어오고, 무엇이든 꼼꼼히 적어 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 ·김한별과 김도근 투석 8년 차인 열일곱 살 소년과 그의 보호자인 삼촌입니다. 한별의 꿈은 축구 한 게임을 풀타임으로 뛰어 보는 것이고, 도근은 대리기사 일을 하며 조카를 돌봅니다.
- ·백우진 사슬의 첫 조각이 되겠다고 나선 순수 기증자입니다. 왜 모르는 사람에게 신장을 주려 하는지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습니다.
첫 장면에서
새벽 세 시 사십 분의 수술장 복도는 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이 건물에서 완전한 정적은 좋은 신호가 아니다. 병원은 시끄러울 때 살아 있다.
첫 장은 수술장 복도의 표시등 다섯 개에서 시작합니다. 네 개는 초록이고 하나는 꺼져 있습니다. 식은 자판기 커피 넉 잔, 주인 없는 슬리퍼, '이식용'이라고 적힌 아이스박스가 놓인 복도에서 하늘색 근무복의 여자가 꺼진 등을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여덟 달 전으로 돌아갑니다. 독자는 다섯 번째 등이 왜 꺼져 있는지 모르는 채로 다섯 가족을 처음 만나게 됩니다.
작가의 말
사건이 터지면 우리는 먼저 책임자를 찾습니다. 이야기 역시 악인을 세우고 단죄로 결말을 대신하는 데 익숙합니다. 그런데 현실의 많은 비극은 악의 없이 일어납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의 선택이 맞물려 아무도 바라지 않은 결과에 닿는 일을, 우리는 흔히 '시스템의 실패'라고 부르고 지나갑니다. 저는 그 시스템을 이루는 사람 하나하나의 안쪽을 들여다보고 싶었고, 그들을 움직인 힘이 대개 선의였다는 데서 이 소설을 시작했습니다.
도미노 이식은 실제로 쓰이는 의학 용어입니다. 생명을 잇는 릴레이이면서, 한 조각이 넘어지면 전부 넘어지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축복으로도 두려움으로도 읽힐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소재를 골랐습니다. 사는 형편도 국적도 나이도 다른 다섯 가족을 몸으로 이어 놓으면, 한 사람의 검사 수치나 마음의 변화가 곧 모두의 일이 됩니다.
시점을 사슬의 순서대로 넘긴 것도 같은 생각에서였습니다. 한 사람의 장을 안쪽에서 읽고 나면 그 사람을 쉽게 미워하기 어렵습니다. 이 책을 덮으실 때 누군가를 단죄하는 개운함보다는 질문 하나를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나라면 그 밤에 어떻게 했을지, 그리고 내 선의는 사슬의 몇 번째 조각인지 말입니다.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규정을 지키면 여러 사람이 기회를 잃고, 규정을 어기면 한 사람이 위험해지는 자리에 선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시나요?
- ·가족을 살리려고 한 거짓말을 선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 거짓말이 다른 사람의 위험이 될 때도 같은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요?
- ·일이 잘못되었을 때 책임을 한 사람에게 돌리고 싶어지는 마음은 어디에서 올까요? 악인이 없는 이 소설에서 그 마음은 어디로 향하게 되나요?
- ·모르는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어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그때 든 감정은 고마움이었나요, 아니면 다른 것이었나요?
